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의 기원
은행나무는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그 명칭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지질학과 식물학이 함께 확인해온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다.
약 2억 년 전 쥐라기 시대, 공룡이 숲을 거닐던 시절에 은행나무의 조상들은 이미 번성하고 있었다. 당시 은행나무과에는 수십 종이 존재했으나, 빙하기와 환경 변화 속에서 대부분 멸종했다.
그 가운데 살아남은 단 하나의 종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은행나무(Ginkgo biloba)**다.
이 점에서 은행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특별하다. 소나무나 참나무가 다양하게 분화해 숲을 이룬 것과 달리, 은행나무는 인류가 아니었다면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를 외로운 생존자다.

번식 구조와 자연의 한계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다. 수나무와 암나무가 있어야만 번식이 가능하다. 수나무는 꽃가루를 만들어 바람에 날리고, 암나무는 수정 후 열매를 맺는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은행의 발아율은 낮고, 발아 후에도 생존 경쟁력이 떨어진다. 성장이 느리고 주변 식물에 쉽게 가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열매의 강한 냄새가 동물들을 기피하게 만들어 씨앗 확산이 어렵다. 다른 나무들은 새나 동물이 열매를 먹고 멀리 퍼뜨려주지만, 은행나무는 이 도움을 받지 못한다.
결국 은행나무가 살아남는 방식은 단 하나, 인간이 심어주는 것이다. 자연의 손길은 끊겼지만, 인류의 손길이 이어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공생 관계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재배와 전설
은행나무의 역사는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기록된다. 송나라 시기, 사찰과 궁궐에 은행나무가 심기 시작했다.
은행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불멸과 장수’를 상징했다. 잎은 약재로, 열매는 음식으로 쓰이며 생활 속 깊이 스며들었다. 중국 불교 사찰에는 천 년 넘은 은행나무가 여전히 남아있다.
스토리텔링 사례: 중국 저장성 한 사찰에는 1,4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가을이면 수만 장의 은행잎이 황금빛 비처럼 떨어져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 나무는 당나라 시기에 심어졌다고 전해지며, 중국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만약 당시 스님들이 심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 장엄한 풍경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은행나무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의해 세대를 이어온 생명이다.

한국과 일본으로의 전파
은행나무는 불교의 확산과 함께 한반도와 일본으로 건너왔다.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 사찰에 심어졌으며, 지금도 천 년 가까운 보호수 은행나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 사례가 구례 화엄사 은행나무다. 수령 1,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가을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이 나무는 단순히 오래된 나무가 아니라, 불교와 역사, 자연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재다.
일본에서도 은행나무는 신사와 사찰에 심겨 신목으로 여겨졌다. 일본 도쿄 메이지진구의 은행나무 길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가을이면 노란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이 모든 풍경은 인간이 직접 은행나무를 심고 가꾼 결과다. 만약 인류가 은행나무를 외면했다면, 이런 문화적 풍경은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으로 건너간 은행나무
17세기, 은행나무는 처음으로 유럽에 전해졌다.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가져왔고, 이후 식물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유럽인들은 은행나무를 ‘살아 있는 화석’으로 소개하며 학문적 호기심을 가졌다. 특히 독일의 시인 괴테는 은행나무를 주제로 시를 남겼다. 그는 은행 잎의 두 갈래 모양을 사랑과 우정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오늘날 독일에는 ‘괴테의 은행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남아있다. 이 나무는 은행나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문학과 철학을 자극한 문화 아이콘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현대 도시 속 은행나무
오늘날 은행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도시의 가로수로 심겨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은행나무 가로수는 도시의 가을을 상징한다. 하지만 암나무 열매의 냄새 때문에 대부분 수나무만 심는다. 이 때문에 자연 번식은 더더욱 어렵다.
즉, 은행나무는 도시 경관을 책임지는 존재가 되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종이기도 하다.
사람 손길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이유
- 낮은 발아율: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숲을 이루지 못한다.
- 동물 기피: 열매의 냄새 때문에 씨앗 확산이 불가능하다.
- 느린 성장 속도: 경쟁력이 떨어져 숲에서 자생하기 어렵다.
이 세 가지 요인 때문에 은행나무는 사실상 인간의 손길 없이는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만나는 은행나무는 모두 누군가가 심어준 결과물이다.

은행나무와 전쟁의 기억
스토리텔링 사례: 1945년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후,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었을 때에도 은행나무 몇 그루는 살아남았다. 폭심지 반경 1km 안에 있던 나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새싹을 틔웠다.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를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 다시 도시를 복구할 희망을 얻었다. 은행나무는 단순한 나무를 넘어 인류 생존의 은유가 되었다.
인류와 은행나무의 공생 관계
은행나무는 스스로 번식하지 못했지만, 인류의 문화와 필요 속에서 생존했다. 사람은 은행 열매를 약재와 음식으로 쓰고, 도시 경관을 위해 심었으며, 종교적 상징으로 보호했다.
반대로 은행나무는 인류에게 황금빛 가을과 장수의 상징, 신성한 의미를 제공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독특한 공생 구조다.
결론: 인류가 지켜낸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는 이미 지구 역사에서 사라졌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는 이 나무를 사랑했고, 그 손길 덕분에 은행나무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가로수, 사찰의 보호수, 세계 유산의 나무로 존재하는 은행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인류가 지켜낸 살아 있는 화석”이자, 자연과 인간이 함께 쓴 생명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 Peter Crane, Ginkgo: The Tree That Time Forgot, Yale University Press, 2013
- 대한식물학회, 『한국 식물학 개론』
- 이창복, 『한국식물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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