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겨울에도 태풍은 생기지만, 왜 우리나라엔 오지 않을까?

writeguri2 2025. 10. 9. 10:39
반응형

서론: “겨울에 태풍이 생긴다고?” 믿기 힘든 기상 역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풍을 여름의 전유물로 생각한다.
뉴스 속 태풍 이름들이 등장하는 시기는 보통 7월에서 10월 사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겨울에도 태풍이 발생한다.

 

놀랍게도 12월, 심지어 1월에도 태풍이 이름을 얻고 태평양 어딘가에서 맴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왜 겨울 태풍은 한국으로 오지 않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날씨 궁금증이 아니라
기상학, 해양학, 대기 순환의 핵심 원리를 품은 흥미로운 퍼즐이다.

 

이 글에서는 겨울에도 태풍이 생기는 이유, 그리고 왜 한반도에는 접근하지 못하는지를
기압 분포, 해수면 온도, 제트기류, 대륙성 기단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과학적으로 풀어본다.


태풍이란 무엇인가 — 열대의 에너지 폭풍

태풍(typhoon)은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tropical cyclone)**이다.
발생 기준은 간단하다.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초속 17m 이상이면 ‘태풍’으로 승격된다.


그 아래 단계인 열대저압부나 열대폭풍은 중심 기압이 상대적으로 높다.

태풍의 본질은 ‘해수면의 열 에너지’를 대기로 전달하는 거대한 열기관이다.


즉, 따뜻한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응결하며 방출하는 잠열(latent heat)이 태풍의 연료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가 상승기류를 강화하고, 중심부 저기압을 심화시킨다.

 

이때 태풍의 탄생에는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1. 해수면 온도 26.5℃ 이상
  2. 충분한 수증기 공급과 대기 불안정성
  3. 적도 부근의 약한 수평풍 전단(wind shear)

이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 태풍은 자가 발전하듯 강해진다.
반대로 이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태풍은 곧 소멸의 길로 접어든다.



태풍의 계절 — 6월에서 10월, 열대의 절정기

북서태평양 태풍의 발생 시기 분포를 살펴보면,
전체 태풍의 약 80%가 7~10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이때 필리핀 동쪽 바다의 해수면 온도는 29~30℃에 이르고,
적도 부근의 대기 불안정이 극대화된다.

 

여름철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하게 확장하며,
태풍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북서쪽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여름~초가을에는 태풍이 필리핀 → 대만 → 일본 남쪽 → 한반도로 향하는 전형적인 경로를 보인다.

 

즉, 태풍은 ‘뜨거운 바다 위에서 태어나,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이는 존재’다.
문제는 겨울이 되면 이 두 조건, 즉 뜨거운 바다고기압의 흐름 방향이 모두 바뀐다는 점이다.


겨울에도 태풍은 생긴다 — 하지만 ‘다른 세상’의 이야기

겨울에도 해수면 온도가 높은 지역이 있다.
대표적으로 적도 서태평양과 남중국해 일부 지역은 12~2월에도 27℃ 내외를 유지한다.
따라서 그 지역에서는 소수의 열대성 저기압이 형성될 수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1951년 이후 1월에 발생한 태풍도 몇 개 존재한다.
예를 들어

  • 1964년 1월의 태풍 'Alice'
  • 2015년 1월의 태풍 'Mekkhala'
  • 2019년 1월의 태풍 'Pabuk'

이처럼 실제로 겨울 태풍은 ‘희귀하지만 실존한다’.
다만, 이들은 대부분 적도 부근이나 남중국해 서부에서 짧게 형성됐다가 빠르게 소멸한다.
즉, 태풍이 ‘생기기는 하지만’ 북쪽으로 자라나 한반도까지 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겨울 태풍이 오지 않는 4가지 과학적 이유

겨울 태풍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한반도로 향하지 못하는 데에는 명확한 과학적 이유가 있다.

1. 해수면 온도가 너무 낮다

태풍은 26.5℃ 이상의 바다에서만 유지된다.
그러나 겨울철 우리나라 남해와 동해의 수온은 10~15℃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태풍의 에너지 원인 수증기 공급이 거의 차단된다.

결국 태풍이 북상하더라도 한국 근처에 오면
“열기관의 연료가 끊겨버린 자동차”처럼 힘을 잃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겨울 태풍은 일본 남쪽 바다에서 소멸한다.


2. 대륙 고기압의 방벽 — 시베리아 고기압

겨울철 아시아 대륙은 차가운 공기로 꽉 차 있다.
그 중심은 시베리아 고기압, 한겨울이면 1,040hPa 이상의 초강력 고기압이다.
이 고기압은 마치 거대한 공기벽처럼 동아시아 전역을 덮는다.

이때 한반도 주변의 바람 방향은 북서풍으로 바뀐다.
즉, 태풍이 북상하려 해도 거대한 역풍에 부딪히게 된다.
겨울의 대기 순환 구조 자체가 태풍의 경로를 차단하는 셈이다.


3. 제트기류(상층편서풍)의 남하

고도 10km 상공을 흐르는 제트기류는 여름보다 겨울에 훨씬 강하고 남쪽으로 내려온다.
이 강한 상층 바람은 태풍을 ‘자른다’.
즉, 태풍의 상층 대류 구조를 파괴해 중심을 무너뜨린다.

**풍전단(wind shear)**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태풍은 상하층의 공기 흐름이 일정해야 성장하는데,
겨울 제트기류는 이 일치를 완전히 깨뜨린다.


4. 북태평양 고기압의 축소

여름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까지 확장되지만,
겨울에는 남쪽으로 크게 물러난다.
그 결과 태풍이 올라올 ‘길’이 막힌다.

태풍은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이는데,
그 가장자리가 필리핀 남쪽에 머무르니 북쪽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요약하자면,
찬 바다 + 강한 대륙고기압 + 남하한 제트기류 + 축소된 북태평양 고기압
이 네 가지가 한반도로 향하는 겨울 태풍의 ‘4중 봉쇄선’을 형성한다.



실제 겨울 태풍 사례로 보는 경로의 차이

  1. 태풍 Pabuk (2019년 1월)
    태국 남부 근처에서 형성, 말레이 반도를 통과 후 사라졌다.
    북상하지 못하고 남중국해에서 에너지를 잃었다.
  2. 태풍 Mekkhala (2015년 1월)
    필리핀 동쪽 해상에서 발생, 루손섬 상륙 후 급속 소멸.
    해수면 온도는 높았지만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해 북상 경로를 찾지 못했다.
  3. 태풍 Alice (1964년 1월)
    괌 인근에서 발생, 일본 남쪽 해상까지 이동 후 온대저기압으로 전환.
    온대전선과 만나며 태풍의 특성을 잃었다.

이 세 사례 모두 공통점이 있다.
한반도 근처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일관되게 “찬 바다와 대륙성 고기압”이었다.


겨울에도 ‘태풍 비슷한 폭풍’은 있다 — 온대저기압

가끔 겨울철 뉴스에 “한반도 부근에 폭풍급 저기압이 통과”한다고 보도된다.
이를 보고 “겨울에도 태풍이 오는 건가?”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건 **온대저기압(extratropical cyclone)**으로, 태풍과는 다르다.

태풍이 열에너지 기반이라면, 온대저기압은 온도 차이에 의한 에너지로 움직인다.


즉,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의 충돌이 만든 기상 시스템이다.

겨울철 한반도에서 눈·비·강풍을 동반하는 폭풍은 대부분 이런 온대저기압이다.
태풍보다 구조가 크고 이동 속도가 빠르며, 중심 기압이 낮아도 온도 구배(gradient)가 명확하다.


기상학적으로 보면 — 계절별 대기 순환의 완벽한 대칭

태풍의 계절성과 겨울의 안정된 대기 구조는 하나의 ‘역전된 그림’이다.

  • 여름: 남쪽의 따뜻한 해양 공기가 우세 → 대기 불안정 → 상승기류 발달 → 태풍 잦음
  • 겨울: 북쪽의 찬 대륙 공기가 우세 → 대기 안정 → 하강기류 강화 → 태풍 억제

결국 태풍은 상승기류의 산물, 겨울 대기는 하강기류의 지배.
따라서 겨울철 한반도는 태풍이 “자랄 수 없는 토양”이 된다.



흥미로운 예외 — 남반구의 여름, 북반구의 겨울

남반구는 계절이 반대다.
즉, 북반구의 겨울(12~2월)은 남반구의 여름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호주 북부, 남태평양, 인도양 남부에서 태풍(사이클론)**이 자주 발생한다.

 

예를 들어 1월의 호주 북부 사이클론, 2월의 마다가스카르 인근 사이클론이 대표적이다.
결국 태풍은 ‘지구 전체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절에 따라 활동 무대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기후변화와 겨울 태풍 가능성 — 미래는 다를까?

최근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겨울에도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가 조금씩 늘고 있다.
북서태평양의 평균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태풍의 북상 가능 영역이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대 이후 일부 태풍은 이례적으로 12월까지 한반도에 비 영향을 준 사례도 있다.
예컨대 **2021년 12월의 태풍 ‘Rai(라이)’**는 필리핀을 강타한 뒤,
소멸하면서도 남해 먼 해상에서 약한 파랑과 간접영향을 주었다.

 

즉, 완전한 ‘겨울 태풍 상륙’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늦가을~초겨울 태풍의 영향 시점이 길어지는 추세다.
기후 변화는 태풍의 계절적 경계를 서서히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요약: 왜 겨울 태풍은 한국으로 오지 않을까?

  1. 바다가 차가워 태풍이 유지되지 못한다.
  2. 시베리아 고기압이 거대한 역풍을 형성한다.
  3. 제트기류가 태풍 구조를 파괴한다.
  4. 북태평양 고기압의 경로 안내가 사라진다.

이 네 가지가 겨울철 태풍의 한반도 접근을 근본적으로 막는다.
결국 태풍은 ‘바다의 열’과 ‘공기의 길’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며,
겨울의 한국은 그 어느 쪽도 갖추지 못한 땅이다.


결론: 겨울의 평온은 태풍의 불가능이 만들어낸 선물

겨울에도 태풍은 바다 어딘가에서 숨을 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겨울 하늘은 그 격렬한 회오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찬 대륙과 차가운 바다가 함께 만든 ‘안정의 장벽’이 우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이제 “겨울엔 왜 태풍이 안 오지?”라는 질문은
“겨울의 기압과 해수면 온도가 만들어낸 자연의 질서”로 답할 수 있다.


그 평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반도의 겨울은, 기상학적으로 태풍이 자랄 수 없는 완벽한 방어막이다.


참고문헌

  1. 기상청 태풍 통계자료 (1951~2024)
  2. Japan Meteorological Agency (JMA), Typhoon Tracks Data

 

반응형